삼대에 걸쳐 나그네를 보살핀 화덕황씨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 미륵원고려 말 부터 조선 초까지 3대에 걸쳐 여행자를 위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던 집이 있던 자리다.
미륵원지를 가자면 대전시 동구 마산동이 목적지, 마을 앞으로는 대청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마산동 가는 길은 세천고개에서 추동으로 넘어와 추동에서 마산동까지 호반을 끼고 가기에 호반 길을 달리는 것도 좋지만 마산동삼거리에서 미륵원지까지 1.8km의 구간을 이동하면서 더욱 가까이 다가온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미륵원지에 다다르니 그 유래비와 문화재안내판, 그리고 회덕황씨 재실입구임을 알리는 철문의 기둥이 이곳이 그곳임을 알리고 있다. 철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회덕황씨 선조추모비가 길가에 세워져 있고, 이곳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 나간 호숫가 길을 걸어가니 길의 끝 어느 농가에 이른다.
풋풋한 고향 인정이 절로, 미륵원지의 노부부
농가는 회덕황씨의 재실. 고려말 미륵원을 건립한 황윤보의 13대손 황경식(75세)옹이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삼성문(三省門)’이라 글자 새긴 현판이 걸린 대문을 들어서니 노부부가 마루에 앉아 밤을 고르고 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며 마루에 다가앉도록 반응이 없다. “이 튼튼하거든 여기 밤 까 잡수, 큰놈으로다가.”, “여기 밤 까는 칼 좀 줘유” 이 집의 바깥주인 황경식 옹의 부인 육애수(72세) 할머니가 막 수확해 온 알밤을 손님에게 권하며 할아버지께 밤을 까먹을 수 있도록 칼을 건네라 한다. “여기 칼, 많이 먹어!” 역시 낮선 이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대하 듯 선뜻 칼을 내민다.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몇 날 몇 시에 방문하겠노라고 미리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갑작스런 방문이지만 인사를 주고받으며 방문이유를 밝힌 것도 아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와 익숙한 사이인 듯 마루에 앉아 권하는 칼을 받아들고 밤을 까먹고 있는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지.. 참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 많이 찍으러 학생들도 오고 대학 교수들도 오고, 어떤 사람은 이 못난 늙은이를 찍어가더니 액자에 사진을 넣어가지고 와서 방에 걸어주고 가기도 했다는 이야기. 밤을 하나 까서 깨물어 먹고서야 침묵을 깬 할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카메라 들고 온 것을 보니 사진 찍으러 온 게지.. 노부부는 방문객의 행색만으로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눈치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여태껏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사셨는가? 부터 이름과 나이 등 시시콜콜한 질문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사진을 찍자니 집안 정리가 미흡해 미안타는 걱정을 오히려 하는 노부부. 생활공간에 무시로 드나드는 사람을 마다치 않기는 어려운 게 인지상정일 터, 인심 좋은 노부부의 그러한 성정은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집안 내력이 아닌가싶다.
미륵원을 상징하는 남루
대여섯 마리의 닭들이 종종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니고 누런 황소가 한가로이 문간채 외양간을 지키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노부부에게 물었다. “소가 있네요. 일 잘해요?”, 할머니 왈 “쟤? 일은 무슨 맨날 놀기만 하지. 일은 경운기가 다 해.” 빈 외양간 허전해서 소를 먹이며 식구 삼는 마음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미륵원지의 회덕황씨 재실의 북쪽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옆면 두 칸 앞면 네 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집. 이 집은 여행객들이 미륵원을 지나다가 무더운 여름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어갈 수 있도록 지어놓은 남루(南樓)라 명명된 누각이었다. 대청댐 수몰지구에 위치하고 있던 이 누각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실로 쓰고 있다.
이 건물은 경상도 지방의 성주에서 황간, 영동, 옥천, 증약을 거쳐 문의, 청주, 천안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덕군 동면의 면소재지였던 이곳은 지서와 의원, 학교 등이 있었고 인근 지역경제의 중심지로서 상권이 형성된 곳이기도 했다.
대전의 후덕한 인심 엿보이는 곳, 미륵원지
미륵원은 고려말 황윤보에 의해 건립되어 회덕황씨가의 적선에 의해 운영된 유서 깊은 생활유적으로 베풀기를 좋아하는 대전 사람들의 후덕한 인심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중요시 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각박한 현대의 삶 속에서 후덕한 인심을 읽지 않고 살아가는 회덕황씨의 13대손 황경식 옹 부부의 표정과 마음에서 선대의 후덕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연만이 아닐 것이다.
문화재정보
- 종목 :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1호
- 명칭 : 미륵원지 (彌勒院址)
- 문의 :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체육과 042-251-4205
- 문화재설명
미륵원지는 고려말 황윤보(黃允寶)에 의해 건립되어 여말선초 회덕황씨가의 적선(積善)에 의해 운영된 역사 깊은 생활유적으로, 행려자(行旅者)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활동에서 점차 사회구조 및 봉사활동으로 확대한 대전 최초의 사회복지 기능을 수행한 민간기관이다.
또한 이색(李穡)과 하륜(河崙), 변계량(卞季良), 정인지(鄭麟趾), 송시열(宋時烈) 등 당시에 정치·학문·문학으로 손꼽히는 인물들이 찬한 제영기(題詠記)에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으며, 청풍명월(淸風明月), 절의정신(節義精神)과 더불어 우리 지방의 향풍(鄕風) 가운데 하나인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대전사람의 후덕(厚德)한 인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위치정보
- 네비게이션 입력 : 명칭검색-미륵원지, 주소검색-대전 동구 냉천로152번길 80(마산동)
- 자가용운전안내 :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판암나들목에서 옥천방면으로 4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동신고등학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대청호수길로 진입. 계속 직진(약5km)하면 마산동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1.8km전방이 목적지다.
- 대중교통안내 : 대전역에서 60번 시내버스(06:00~22:20까지 80분 간격으로 운행)를 이용하거나 동신고교에서 출발하는
71번 시내버스(05:50~20:50가지 140분 간격 운행)를 이용하면 마산동 버스정류소에서 내릴 수 있다. 버스에서 내려 호숫가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왕복 3.6km.
- 자료관리 담당부서
- 관광문화체육과
- 042-251-4204
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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