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한국의 전통정원
남간정사나머지는 자연의 멋을 그대로 살려서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미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조선시대의 정원을 보고자 한다면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이 지은 남간정사를 주목해 볼 일이다.
조선왕조 실록에 3000번 이상이나 이름이 오를 정도로 당대에 학문적 정치적 자취를 남긴 인물 우암 선생은 옥천 에서 출생한 조선의 대유학자이며,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조선 인조 대 부터 숙종 대에 이르는 4대에 걸친 노론의 대표로서 정계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기도 하였다.
지금의 동구 계족산 서쪽 기슭 계곡을 가로질러 능인암 아래 지은 남간정사는 우암 선생이 말년에 지은 서당으로 많은 제자들을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끌어낸 건축물로 알려진 이 건물의 앞마당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연못은 이곳 정원을 완성하는 주요한 요소. 연못에 흘러드는 물은 강학공간인 대청 아래로 흘러드는 물과 계족산 쪽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흘러드는 물로 채워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연못의 중앙은 동그란 섬을 만들어 정적인 가운데 변화를 주고, 건물의 일부분 외에 연못 주변은 원래 있던 자연석을 그대로 두고 조경을 마무리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원에 끌어들이고 있다.
남간정사의 공간배치
남간정사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외삼문과 강학당과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 공간인 내삼문 등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외삼문 공간의 마당에 들어서서 좌측, 담장 옆의 연못가는 남간정사의 정원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인트다. 남간정사와 연못이 어우러진 자연스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연못외에 나머지 공간은 본래 협소한 공간은 아니었다. 선생이 소제동 소제방죽 옆에 세웠던 건물 구기정을 옮겨놓아서 마당이 협소해졌는데 소제방죽을 메꾸기 전 당시의 소제방죽에 연꽃을 심고 건물 주변에는 국화와 구기자를 심었다 한다.
"연꽃은 군자를, 국화는 세상을 피하여 사는 것을, 구기자는 가족의 단란함을 각각 의미한다."하며 선생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학문을 논하며 지냈는데, 선비들이 구기자와 국화의 무성함을 보고 건물 이름을 기국정이라 불렀다 한데서 건물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건물은 본래 초가지붕이었으나, 선생의 큰 손자가 기와지붕으로 수리하였고, 그 후 소제가 메워지면서 건물도 차츰 허물어지게 되자 1927년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건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남간정사의 전체 배치는 연못과 기국정으로 이루어진 정원영역과 서당과 후원으로 이루어진 교육영역. 그리고 남간사의 사당영역으로 구분된다.
살아있는 고목 그리고 죽어서 집이 된 나무
기국정을 지나 서당의 삼문에 이르자 문 앞의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눈길을 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이 나무가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중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중략" / 지나가는 길에 /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 "중략" 시 속의 그 나무는 아니나 다가가 살펴보니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였다. 수령은 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이백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 나무는 한 뿌리에서 두 가지가 나온 것이지 싶다. 한 줄기는 곧게 자랐고, 한 줄기는 서당 앞으로 길게 누워 자라 서당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고건축 답사를 가거든 그 주변 살펴 볼 일이다수 백 년 묵은 고목을 보며 그 내력 쫒아보면 전통문화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들 그러하지만, 죽어서 집이 된 나무 또한 수백년을 훌쩍 넘기며 고택의 고색함을, 멋스러움을, 굳건함을 온몸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 나무의 숨결 또한 느껴보라.
문화재정보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제4호 남간정사(南澗精舍)
- 답사문의처 : 대전광역시 동구 관광문화체육과 042-251-4205
- 문화재설명 :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또한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맞은편 언덕에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교통정보
- 네비게이션 입력 : 명칭검색-남간정사, 주소검색-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가양동)
- 자가용 이용안내 : 경부고속도로 대전나들목 통과 후 계속 직진하여 동부네거리에서 좌회전 후 직진하여 언덕을 넘으면 가양 네거리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600m 전방에 조일아파트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550m 가량 계속 직진하면 우암사적공원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 주차. 공원 내 남간정사가 있다.
- 자료관리 담당부서
- 관광문화체육과
- 042-251-4204
최종수정일 2020-07-13
-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