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의 산성
고봉, 견두, 마산동 산성담자락 밑에서 노오란 개나리가 봄을 알리는가 싶더니 봄 꽃 중 가장 화려하다는 벚꽃이 벌써 마지막 꽃잎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다. 삼정동 산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판암주공아파트 4단지 앞 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편리성에 더하여 등산로를 중간중간에 핀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성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대전에서 충북 옥천으로 통하는 4번 국도와 식장산 방송탑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시원하다. 성은 옥천(玉川)방면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17호이며 판암동 산 1번지인 표고 240m의 산 정상부에 퇴뫼식으로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둘레는 약 350m이다.
식장산 방향의 동벽은 돌무더기로 남아 있고 동벽의 맞은편인 서벽은 험한 지형에 급경사로 성돌이 유실되어 통과선만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남벽 또한 성벽이 돌무더기로 남아 있고 북벽에는 일부 구간에 3단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담자락 밑에서 노오란 개나리가 봄을 알리는 가 싶더니 봄 꽃중 가장 화려하다는 벚꽃이 벌써 마지막 꽃잎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다. 삼정동 산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판암주공아파트 4단지 앞 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편리성에 더하여 등산로 중간중간에 핀 이름모를 야생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성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대전에서 충북 옥천으로 통하는 4번 국도와 식장산 방송탑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시원하다. 성은 옥천(沃川) 방면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17호이며 판암동 산 1번지인 표고 240m의 산 정상부에 퇴뫼식으로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둘레는 약 350m이다.
식장산 방향의 동벽은 돌무더기로 남아 있고 동벽의 맞은편인 서벽은 험한 지형에 급경사로 성돌이 유실되어 통과선만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남벽 또한 성벽이 돌무더기로 남아 있고 북벽에는 일부 구간에 3단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대부분이 허물어져 성의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봉산성은 동구 주산동 산19-1번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표고 340m의 고봉산 정상에 퇴뫼식으로 쌓은 백제시대 석축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250m이며 동서로 바나나 형태를 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21호이다.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질현산성이 있어, 이 성의 자성(子城)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성은 질티고개를 두고 질현산성과 나란히 있어 이 고개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아졌다고 추측된다.
성이 위치한 곳은 대부분 급경사의 절벽이다. 따라서 대청호 방향의 동벽은 완전히 무너져 성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상태이고 맞은편 북벽 또한 성벽을 찾기 힘들다. 다만 서벽은 붕괴되기는 하였으나 성벽의 통과선은 확인할 수 있다. 남벽도 급경사 지역으로 성의 흔적을 찾기 힘드나 서쪽부분에 막돌로 축성한 성의 일부를 볼수 있다.
견두산성은 동구 효평동 산 83번지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천개동 고개 등산로를 따라 30분정도 북동쪽으로 걷다보면 표고 365m의 개머리산에 이른다.성은 이 산 정상에 퇴뫼식으로 백제시대에 쌓은 석축산성이다.성의 둘레는 약 280m로 추정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20호이다.
성 서벽쪽에서 서쪽으로 보면 계족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이에 견두산성을 계족산성의 부속성곽으로 보기도 하며 두 산성이 동서로 마주보면서 천개동, 직동, 금강, 청원쪽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좌우에서 감시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은 사방이 급경사인 산의 정상에 있다. 그래서인지 거의 허물어진 것은 물론이고 극히 일부 구간에서만 성의 존재가 확인된다.
말미 마을과 대청호 방향의 동벽에는 성벽의 뒤채움석만 1~2m정도 남아 있으며, 서벽과 북벽은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남벽에는 2~3m 길이의 막돌로 축성한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마산동 산성은 동구 마산동 산 6번지(사스미골)에 위치하고 있다. 위의 3개의 성과는 달리 통행이 쉬운 등산로는 없고 추동 말미 마을에서 사스미골로 진입하는 것이 좋다. 스미골에는 2채의 집만이 있는데 이 집의 뒷산에 위치한 성은 표고 200m의 산 정상부에 퇴뫼식으로 축조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약 220m이다.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30호이다.
성에 오르면 동쪽 방향으로 위치한 대청호의 조망이 매우 좋다. 원래 성 아래의 인공 호수인 대청호는 대전에서 청주·문의 방면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 였다. 따라서 마산동 산성은 대전에서 청주·문의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감시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댐 방향의 동벽은 남쪽과 북쪽부분에 길이 약 5~7m가 남아 있다. 서벽은 대부분이 허물어져 성의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을뿐이다. 남벽은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부분으로 길이 10~15m의 성벽이 남아 있다. 특히 남벽과 동벽 경계에는“ㄱ”형태로 꺾이는 부분이 있는데 6~7단의 잘 다듬어진 성돌과 부드러운 꺾임이 볼만하다.
우리 동구에 있는 11개의 산성은 삼국시대 신라의 영토였던 옥천지역과 맞닿은 백제의 최일선의 싸움터이자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 소중했던 터전은 백제가 신라에 의해서 패망하고 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허물어져 가고 잊혀져 가는 전설이 되었다. 하지만 동구의 산성들은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산성은 제 얼굴을 오롯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전 둘레산길을 이용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성이 등산객들에겐 대화와 관람의 소재가 되고 있으며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는 백제의 역사를 상상케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아울러, 어떤 이들은 산성에서 새로운 문화의 블루오션을 꿈꾼다.
백제인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 유산인 동구의 산성들이 우리들의 관심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자료관리 담당부서
- 관광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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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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