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에 오면 관광愛 물들어요

동구의 산성

비파산성
예로부터 산성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시설 이었다.

특히 산성은 나라의 영토를 경계 짓거나, 한 국가의 안위를 결정짓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특히, 산성은 나라의 영토를 경계 짓거나, 한 국가의 안위를 결정짓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우리 동구에는 모두 11곳의 산성이 있다. 이번 호에는 백제의 역사가 숨어있는 곳, 동구 소호동에 있는‘비파산성(소호동 산성)’을 찾아가 본다.

제 25호 비파산성 기념물 사진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에 비파산성을 찾아 길을 나섰다. 대전 동구 대별동에 위치한 대전운전면허시험장을 좌측으로 끼고 있는 대별교를 지나, 대별동 만물슈퍼 삼거리에서 소호·장척 방향으로 차를 몰아 1킬로미터 정도를 오르니 지푸제 초입이 나온다.
좁디좁은 지푸제를 오르는 길 양 옆에는 깍아지른 검은 절벽이 웅장하게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비파를 당기는 형국이라 하여 비파티라 불리다가 지금은 깊은(지푼) 골짜기라는 말이 지푸제로 변형되어 쓰이고 있다 한다.
구절양장같은 지푸제 오르는 길 중간에는 지푸제 약수터와 정자가 오가는 길손의 쉼터가 되고 있다. 지푸제 정상에서 바로 오른쪽 임도를 따라 2~3백미터를 올라가면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비파산성 입구에 이른다. 입구에는 비파산성의 역사를 알리는 깨끗한 흰색 알루미늄 프레임에 하늘색 바탕의 안내판이 방문객을 반긴다. 비파산성은 이사동 산18번지 일원의 이사동,소호동,대별동 경계에 있는 석축산성으로 지푸제 고개의 서쪽 해발 309m 성재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대전에서 금산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감시하는 목적과 대전시내의 남쪽 부분을 감시할 목적으로 백제시대 때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지(남문터), 북문지, 서문지 3개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남북으로 길쭉한 정방형의 형태로 둘레는 약 350m에 이르는 퇴뫼식 산성이다.

산성은 성의 입지조건과 지형선택의 기준에 따라 퇴뫼식과 포곡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퇴뫼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주위에 성벽을 두른 모습이 마치 수건을 동여맨 것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규모가 작은 산성에 채택되는 방법이며, 포곡식(包谷式) 산성은 성 내부에 넓은 계곡을 포용한 산성으로 계곡을 둘러싼 주위의 산릉에 따라 성벽을 축조한 것이라 한다.
비파산성 안내문 뒤로 산정상을 향해 나있는 45도 경사의 산길을 따라 150m 정도 올라가면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에 이른다. 성벽은 무너져 있으나 풍화된 화강암으로 석축된 성돌이 지면 위로 1~2단정도 일부 돌출되어 있어 산성의 흔적을 알 수가 있다. 남문지를 바라보고 좌측은 서벽, 우측이 동벽, 맞은편 넘어가 북벽이라 한다.

산성 탐방을 즐기기 위해서 우선, 남문지 성벽을 이정표로 하여 약 350m에 이르는 비파산성의 둘레 흔적을 찾아 보면 좋다. 비파산성은 비록 성벽이 거의 허물어져 온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성벽의 동선은 군데군데 무너진 돌더미들의 흔적을 따라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보물을 찾는 탐험가처럼 성의 흔적을 찾아가다가 발견하는, 수천년을 버텨온 성벽의 모습! 그리고 머릿속에서 복원되는 성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뿐인가! 남벽과 북벽의 검푸른 이끼가 낀 성벽과 성돌을 보는 것도 흥미꺼리 중 하나다. 켜켜이 쌓인, 잘 다듬어진 그러나 비바람에 풍화되어 우둘툴한 화강암으로 석축된 성벽과 성돌이 주는 시간과 역사의 교감은 우리 내면 깊숙이에서 그 무엇이 “너는 누구인가” 를 질문하다.

그리고, 온전치 못한 성의 모습에 약간은 있을 실망감을 잠시 감추고 북벽에 서보라. 깍아지른 절벽의 위압감에 일순간 눈이 아찔하지만 탁 트이는 대전 시내의 전망과 함께 이내 맞은편의 보문산과 보문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일순간 백제의 병사가 되어 보문산성에서 비파산성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백제 병사에게 서로의 존재 확인을 위해 손을 흔들거나 소리치고 싶은 욕망이 솟는다. 비파산성 탐방으로도 뭔가 허전함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비파산성 주변의 또 다른 역사에 눈을 돌려도 좋다.

비파산성의 서문지 밑으로 1~2킬로미터 아래에 동구 이사동이 위치하고 있다. 서문지 밑으로 흐르는 산길을 내려서 가거나 아니면 비파산성을 나와 다시 대별동에서 이사동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조선시대우암 송시열의 후손 집성촌인 이사동에서 은진송씨 재실(월송재 등)과 다양한 분묘와 석물 그리고 광영 소류지를 구경할 수 있다.
얼마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전국에 거주하는 1천 19명을 대상으로 백제문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조사하였다. 국민들 가운데 43%는 백제 역사문화에 대하여 모른다고 답하였으며 12%만이 안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여기에 44.5%의 국민이 백제하면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가 패망국가의 이미지라 한다.
그렇다. 비파산성은 백제의 역사와 함께 잊혀져 가고 있는 산성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가 작은 관심을 갖고 비파산성을 찾아가 보고, 나아가 백제의 모든 흔적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면 비파산성, 백제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로 다시 봄의 꽃망울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비파산성 약수터에서 물뜨는 사진
  • 비파산성 등산 사진
  • 자료관리 담당부서
  • 관광문화체육과
  • 042-251-4204

최종수정일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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